본문 바로가기
뇌과학-뇌파, 기, 초능력

관찰자 효과는 존재하는가?

by 유심 2022. 4. 25.

관찰자 효과는 양자역학의 이중 슬롯 실험의 결과로 관찰자가 관찰을 하는 경우에는 입자의 성질을, 관찰을 하지 않는 경우에는 파동의 성질을 나타내는 현상에서 비롯된 말이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턴가 관찰자 효과는 정말 존재하는가의 문제를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이 논란에 대해 여러 관점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논란의 배경

한 가지 간단한 실험의 예를 들어 보겠다.

두 개의 물병에 물을 채우고
한 개의 물병에는 좋은 말을, 또 하나의 물병에는 나쁜 말을 며칠 동안 반복했다.
그리고 이 물을 얼린 후 그 결정체를 관찰했다.
그 결과,
좋은 말을 했던 물의 결정체는 아름다운 무늬의 균일한 모양을,
나쁜 말을 했던 물의 결정체는 일그러진 보기 흉한 모양을 만들어 냈다. 

바라보는 관점이나 시각의 차이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결과를 도출해 내는 실험이다.

이 실험으로 관찰자 효과를 설명할 수 있을까?

한 가지의 예를 들었지만, 이와 비슷한 연구와 실험의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과연, 관찰자 효과는 설명이 되었을까?

 

 

과학이다. 유사과학이다. 까지로 번져지고 있는 이 논란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우선, 물질의 개념과 입자는 무엇이고 파동은 무엇인지, 양자의 정의는 무엇인지를 알아 둘 필요가 있겠다.

 

물질

고전역학에서는 물질을 '질량과 부피를 갖는, 물체를 이루는 존재'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양자역학의 등장으로 물질에 대한 개념도 바뀌었다.

과학의 영역이 거시 세계에서 미시세계로 확장되어 감에 따라 물질의 개념 또한 변화하게 되는데 눈에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 입자에서 에너지의 형태로 까지 확장되어 가는 듯하다. 이렇듯 점점 더 모호하게 변화해 간다.

이러한 모호함은 모든 물질이 입자의 성질과 파동의 성질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더욱 두드러진다.

그만큼 학자들의 견해가 다르다는 말일 것이다.

예를 들어

빛은 입자이면서도 파동이지만 질량이 없다. 그렇다면 물질인가, 물질이 아닌가를 놓고도 명료하게 정의 내리지 못하는 듯하다. 모호하다는 이야기는 물질로 보는 듯하기도 하고, 아닌 듯하기도 하다는 이야기다.

과학을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애매한 표현을 할 수가 있느냐고 누군가가 화를 낸다고 해도 어쩔 수가 없다. 

확률로 존재하는 양자역학에서는 명확하게 답을 내릴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이해하는 수밖에...

 

  • 입자
물질을 이루는 미세한 크기의 물체.
양성자, 중성자, 전자가 원자를 이루는 물질.
파동과 대치되는 개념.

 

  • 파동
한 곳에서 시작된 진동이 퍼져나가는 현상을 말하며 매질을 통해 에너지가 전달된다.
반면, 빛(전자기파)은 매질이 없이도 전파가 된다.
진동수와 파장을 갖는다.
에너지가 퍼져나가는 현상.

 

  • 양자
양자는 사전적으로는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에너지의 최소량의 단위라고 정의하고 있다.
광자, 전자, 원자, 중성자, 최근에는 분자도 양자로 밝혀지기도 했다. 

관찰자 효과는 존재한다는 견해

물질은 파동적 성질을 가지고 있다. 파동은 진동과 파장으로 에너지를 전달한다.

이 물질의 파동(진동이나 파장)이 변화하게 되면 결과 또한 변화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의 의식이 물질의 확장된 개념의 범위에 있다는 가정하에서는 사람의 의식 또한 파동의 성질을 가지며, 파동이 변화하게 되면 다른 물질의 파동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의식의 파동이 대상 물질에 영향을 주게 되면 그 물질의 파동과 간섭을 일으켜 결과가 변화하게 된다는 말이다.

 

관찰자 효과는 없다는 부정적 견해

물질은 관찰(관측)되기 전에는 파동의 성질을 띄다가 관찰(관측)과 동시에 입자의 성질로 바뀐다.

다시 말해서, 관찰자의 입장에서는 입자만을 보게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관찰의 개념이다. 여기서 얘기하는 관찰은 다른 물질 간의 상호 어떠한 작용도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공기와의 접촉도 빛의 입자의 간섭도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파동의 모습으로 움직이다가도 어떠한 요인의 간섭이 일어나는 순간 입자의 특성으로 바뀌어 버리기 때문에 관찰자의 의식이 개입될 가능성조차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관찰자의 의도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그런 의미의 관찰자 효과는 절대 일어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어느 문과생이 바라보는 또 다른 견해

  • 물 위에 돌을 던지면 동그란 원이 점점 커지는 모양으로 물결이 생긴다. 두 개의 돌을 던지면 두 군데의 물결이 간섭을 받아 또 다른 모양으로 퍼져 나간다.
  • 강아지가 짖으면 그 소리에 때론 깜짝 놀라기도 하고, 때론 간식을 주기도 한다.
  • 전자제품에는 전파인증을 받아야 한다. 이를 어기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 그 이유는 전자파가 다른 기기와 간섭하여 오작동을 일으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 노랫소리에 와인 잔이 깨지기도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한번 이상 경험해봤거나 들어본 적이라도 있는 쉽게 접할 수 있는 현상들이다.

이것을 두고 어느 누가 유사과학이라고 하겠는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많은 실험의 사례들만 보아도

사람의 의식이나 관점이 뇌의 작용이라면 뇌파에서 나오는 것이고 뇌파도 파동이고 보면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아니, 불가능하다고 하면 그것이 이상한 것이다.

 

 

 

다만, 관찰자 효과의 존재에 대한 결론에 대해서는,

물질의 이중성은 관찰의 유, 무에 따른 현상일 뿐이다, 이 현상에 '관찰자 효과'라는 표현을 가미한 까닭으로 논란이 생긴 듯하다. 다시 말해, 관찰자 효과라는 표현에 얽매여서 의미 있는 본질을 놓치고 있다는 느낌이다.

마치 정작 봐야 하는 달은 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끝만 쳐다보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는 말이다.

 

사람의 의식이나 관점이 다른 물질, 더 나아가서는 우주에 미쳐질 영향 등의, 충분히 양자역학적인 연구와 실험들이고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해낸 연구임에도 논란으로 인해 가치가 훼손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하지만, 이런 논란의 뒤에는 반드시 몇 단계 더 발전한 과학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미래의 과학이 더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양자역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마저도 양자역학을 이해한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고 한다.

이해한다는 사람을 더 이해할 수가 없다고 할 정도로 기묘하고 모호한 과학의 분야가 양자역학 이라고도 한다. 

확률로 존재하는 과학이기에 맞는 것도 틀린 것도 없다. 중첩되어 가능성만 있을 뿐이다.

 

 

함께 보면 좋은 글

 

관찰자 효과로 소개된 사례들

유명한 자기 계발 서적인 '왓칭'이라는 책에서는 바라보는 시각과 관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실험 사례들을 들어서 설명을 해 놓았다. 이 실험 사례들을 관찰자 효과로 설명하

skclaqks.tistory.com

 

 

댓글